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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상식 게시글의 상세정보
제 목
최소한의 소비
해설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명체 중에서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은 영양흡수와 자원이용방식에서 매우 구별된다. 식물은 광합성반응을 통하여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만들어낸다.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와 햇빛을 이용하여 기본적인 영양분인 포도당을 만들고 뿌리에서 흡수하는 몇 가지 원소를 이요하여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만들어낸다. 식물이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다른 동물이나 사람의 도움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식물만이 지구상에서 자립할 수 있다.    동물과 사람은 이에 비해 식물에서 양분을 얻는 의존적인 존재이다. 어떤 동물은 풀만 먹지만 풀과 다른 동물은 먹는 잡식성 동물도 있다. 밥과 생선은 물론 몸에 좋다고 개구리나 뱀까지 먹는 사람은 대표적인 잡식성 동물도 있다. 밥과 생선은 물론 몸에 좋다고 개구리나 뱀까지 먹는 사람은 대표적인 잡식성 동물이다. 매우 분명한 사실로서 "식물은 동물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동물은 식물 없이는 살지 못한다." 식물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필요한 만큼만 흡수할 뿐이다. 여분의 영양소를 필요한 만큼만 흡수할 뿐이다. 여분의 영양소를 흡수하여 저장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 역시 여분의 먹이에 관심이 없고 꼭 필요한 만큼만 그때 그때 이용할 뿐이다. 공작새는여벌의 아름다운 깃털을 준비하고 있지 않으며 까치는 2개의 둥지를 만들지 않는다. 유독 사람만이 욕심을 부려서 과식하며(필리핀의 이멜다처럼), 3천켤레의 구두를 사기도 하고, 두 식구가 살면서 4개의 방이 있는 호화아파트를 구입하기도 한다.    생태계를 이루는 구성원들은 먹이 뿐만 아니라 자원의 이용에 있어서도 지극히 합리적이며 낭비가 없다. 필요이상으로 음식을 낭비하며 자원을 남용하고 쓰레기를 만드는 것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특성이다. 인간은 동·식물과는 달리 주어진 본능대로 살지 않고 욕만에 의존하여 사는데, 이러한 욕망은 문명을 발전지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억제되지 못하면 욕심이 되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유독 사람만이 이 지구에서 과로사하거나, 소화제를 먹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유일한 생물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을 필수품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내용의 책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활을 보면 매우 소박하며 사용하는 물건의 가짓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100년 전에 생활필수품의 가짓수는 50개에 불과했닥 한다. 소득의 증가와 함께 필수품의 가지 수는 꾸준히 늘어나서 이제는 중진국에서는 3백가지, 선진국에서는 8백가지의 필수품 목록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나의기억으로도 1960년대만해도 이사갈때에 사람이 끄는 리어커 하나면 충분하였다. 그러다가 용달차가 이삿짐을 실어 나르더니 다음에는 트럭이 등장하고 요즘에는 부잣집이 이사갈 때에는 대형 트럭 두대가 동원되기도 한다. 나는 비교적 물건을 잘 안사는 편인데도 옷장을 열어보면 넥타이가 10개는 된다. 그 중에는 지금까지 닥 한번 매어본 넥타이도 있다. 필자는 아직도 비누를 턱에 묻혀서 면도를 하지만 다른 집에 가보면 욕실에 있는 선반이 온갖 화장용품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누대신 샴푸가 나오더니 샴푸가 분화되어 영양샴푸가 나오더니 샴푸가 분화되어 영양샴푸, 린스, 컨디셔너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사는데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이지만, 새로 산 모든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쓰레기로 변하고 만다. 필자가 환경과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쓰레기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물건 + 시간 → 쓰레기    즉, 모든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하는 펜티엄 컴퓨터도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낡은 구형이 되고 결국은 쓰레기가 되고 말 것이다. 큰 텔레비, 큰 냉장고를 주부들이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큰 물건은 치우기 힘든 큰 쓰레기로 변하고 작은 물건은 작은 쓰레기로 변하고 만다.    쓰레기를 매립하는 것이 환경에 피해가 적은가? 소각하는 것이 피해가 적은가? 하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쓰레기를 적게 만드는 것이 더 좋다는 것, 매립과 소각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쓰레기를 안만드는 것이다.    절약은 오랫동안 어느 사회에서나 미덕이었다. 우리는 물건을 아껴쓰고 오래 쓰도록 자녀들을 가르쳐왔다. 그러나 이러한오랜 전통은 우리나라가 중진국에 접어든 1990년대 이후에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 한 대를 사서 20년씩 쓴다면 가전회사에서는 싫어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현재 쓰는 텔레비전을 구형화하여 쓰레기로 만드는 것이 신제품 개발팀의 지상목표일 것이다. 제품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휴대폰의 모델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가를 보라. 이러한 소비경향은 신세대에게서 더욱 두드러지지만 구세대 역시 경제발전과 함께 소비하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쓰레기 종량제 실시 이후에 쓰레기가 줄어들었다고 발표되었지만, 소비가 줄어들지 않았는데 쓰레기의 총량이 줄 수는 없다. 일부는 분리수거를 하고 나머지는 봉투에 꽉꽉 눌러 담아서 부피가 줄었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소비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 전체를 보아도 한 나라를 보아도 소비는 매우 불균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는 미국이 전세계 자원의 25% 그리고 에너지의 40%를 사용한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이 모두 잘사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상류 20%만이 소비의즐거움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류의 20%를 차지하는 12억 이구는 절대빈곤에서 허덕이고 있다. 미국인은 일주일에 고기를 1㎏씩 소비하는데, 인도사람은 일년에 1㎏을 소비할 뿐이다. 쇠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3천리터의물과 2리터의 휘발유가 소요된다.    소비가 늘어날수록 지구의 환경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소비하기 위해서는 자원을 소모해야 하며 물건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한다. 모든 인류가 미국사람처럼 소비할 수는 없다. 중국에 사는 13억 인구의 생활수준이 미국만큼 높아진다면 중국은 물론 전세계의 자원과 에너지가 감당할 수 없으며 전세계의 공기와 바다는 오염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를 유도하는 경제체제와 소비를 유혹하는 광고에 짓눌려 자칫 간과하는 것은 소비와 만족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소득이 높아져서 많이 소비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있다. 그러나 사회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행복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는 실제로는 소비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는 결혼생활의 만족, 일에 대한 만족, 우정, 여가 등이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결코 소득을 늘려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낮은 나라인 부탄의 국왕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국민소득으로 행복을 측정할 수는 없다. " 맞는 말이다. 정치가는 임기 동안 1인당 소득을 2배로 늘려주겠다고 공약하지만 행복과 만족이 2배로 늘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민소득은 생사되고 소비되는 물질의 양을 측정할 뿐이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을 측정하는 잣대는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소비를 위하여 소득을 늘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소득이 늘어나면 행복하다고생각할까? 조사결과를 보면 대개 자기 현재 수입의 2배면 행복하리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00만원 월급생활자는 200만원 벌면 행복하리라고 대답하였고, 천만원 소득자는 2천만원 정도 벌면 행복하리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00만원 소득자가 200만원을 벌면 그의 목표는 다시 상향조정되고 그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비는 식사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식욕은 충족되어야 하지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으며 초과하면 오히려 해로운 것이다. 소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어느 정도 무건을 소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어느 한도를 넘으면 환경측면에서는 물론이고 행복측면에서도 해로운 것이다.    어느 정도의 물건이 있어야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 글귀를 발견하였다. 법정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가 필요할 때 하나로서 만족해야지 둘을 가지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건 허욕이다. 하나로서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그 하나속에 있다. 둘을 얻게 되면 행복이 희석되어서 그 하나마저 잃는다." 즉, 법정스님이 정의하는 욕심은 하나가 필요한데 두개를 가지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그 예로서 자기가 다기를 하나 가졌을 때에는 애지중지 소중히 여겼는데, 다기가 두 개가 되자 처음 하나 가졌을 때의 알뜰함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법정스니미 거처를 방문하여 물건의 가짓수를 세어본다면 아마도 너무도 적은 수의 물건으로도 삶을 유지할 수 있음에 깜짝 놀랄 것이다.그의 오두막집에는 전기가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니 가전제품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법정스님이나 데레사 수녀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 살면서 매일 출퇴근하고, 또 아이들을 양육시켜야 하는 보통사람들에게 이러한 삶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많은 소비를 목표로 사는 삶은 결코 행복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최소한의 소비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현대와 같은 물질만능의 시대에 환경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대량소비의 사다리를 사력을 다해 올라가지만, 그 끝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에 환경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정도를 가지는 것일 뿐이다.
정보출처일자
2000-10-01
정보출처
한국관리연구소
정보출처국가
한국

정보담당자
김민지
Tel
02-2284-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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